허수는 존재하는가?

허수 imaginary number의 이름은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사용하면서 처음 창안되었다. 이 명칭은 가우스와 오일러를 거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허수라는 명칭은 말 그대로 허수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수’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 허수가 더 이상 ‘상상 속의 수’에서 머물지 않고 많은 학문(특히, 수학, 물리학, 공학)에서 널리 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상 속의 수’라는 이름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허수는 존재하지 않는 수이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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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모 무신론 페이지에 게시된 사진. 허수는 존재하지 않는 수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실수는 존재한다’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위 그림을 게시한 페이스북 글 댓글을 봐도 허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측이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측이나 실수의 존재성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실수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실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전혀 없다. “뭐라고요? 왜 실수가 존재하지 않나요? 우리는 매일같이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데요?” 잘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실수’라는 ‘도구’를 만들어 그 도구를 ‘사용’할 뿐이었다. 수를 세는데 ‘사용’하고 길이를 재는데 ‘사용’하고 질량을 재는데 ‘사용’한다. 또한, 그 도구 내부의 규칙을 설정해서 도구 사이에 연산을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허수’라는 ‘도구’를 만들어 그 도구를 ‘사용’한다. 각종 수학적, 물리학적, 공학적 계산에 허수는 엄청나게 많이 사용되며, 이들 사이의 연산도 정의되었고, 이를 이용해 고차원적인 응용이 가능하다. 이렇듯 허수와 실수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없는데도 우리는 ‘실수는 존재하고 허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 학교 교양과목 현대철학사조를 가르치는 강진호 교수님에 따르면 이 물음은 ‘아직까지 해결되지도 않았고 해결될 수 있는지 그 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물음이다.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딱히 합의된 결론은 없다.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하다. ‘실수는 존재한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의 존재성도 여전히 많은 철학자들의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다. 프레게는 모든 존재자를 ‘대상’과 ‘개념’으로 나누었으며 수는 엄연히 하나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프레게는 현대 논리학 중 많은 부분을 혼자서 집대성한  엄청난 사람이다. 여기에서 ‘개념’이란 함수를 가리키는데, 그는 모든 술어와 ‘그리고’, ‘또는’ 등의 단어들을 함수로 보았다.) 반면에, 수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한 수학이라는 학문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는 극단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수의 존재성이 수학의 논의 대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비록 ‘수학’ 카테고리에 있지만. 만약 수의 존재성에 대한 논문을 수학 저널에 내면 한칼에 거절당할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수의 존재성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따라서 ‘실수는 존재하고 허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맞을 이유가 없다. 실수나 허수나 활용을 위해 개발된 도구이며 단지 쓰이는 용도가 다를 뿐이다. 수 체계라는 것은 확장되기 나름이다. 자연수에서 정수로, 정수에서 유리수로, 유리수에서 실수로, 실수에서 복소수로, 그리고 사원수까지 지금까지 확장되어 왔다. 음수가 허수와 비슷한 취급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이 수 체계들 중 어떤 것은 존재하고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냥 전부 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인 것이다.

2 comments

  1. 일단 수학에서 수만 다루고 있는건 아니죠. 어쩌다보니 이름이 ‘수학’이 되었지만.

    수는 크기를 나타내다 발견한 추상적인 개념이에요. 존재성을 따진다면, 사랑이나 도덕 같은 것과 비슷한 정도로 실재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1.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몰랐는데 프레게도 비슷하게 생각했었더라구요. 수를 어떠한 속성이 논리적으로 추상화된 대상이라고 생각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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