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대한 생각

어제 과방에서 한 과학철학에 대한 토론에 이어서 오늘까지 계속 이어진 생각.. 일단 기본 베이스는 존재성을 관측에 의한 것으로 정의한다는 건데, 뭔가 헛점이 매우 많아보인다.

공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에 실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실 실존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실존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존재는 관찰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물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존재해야 한다. 관측할 수 없다면 존재와 비존재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그럼 내가 관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감각기관을 이용해 관찰한 현상과 실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찰한 현상의 존재성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없다고 본다. 다만 얼마나 신뢰성이 있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내 관찰도 결국 하나의 실험이다. 예를 들어 시각에 대해서라면, 물체에서 나온 광자를 내가 측정하는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내가 관찰하진 않았지만 존재한다고 여겨지는것, 이를테면 세계 반대편의 나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물체는?

음.. 존재의 정의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존재란 내가 관찰한 것이 아니라 내가 관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계 반대편의 물체는 지금 관찰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관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면 관찰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오컴의 면도날로 판단한다. 세계 반대편의 물체는 관찰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습득할 수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보들은 물론 틀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문헌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 내가 그 물체를 관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각각 다른 관측 결과를 내놓으면 존재성을 어떻게 판단할까. 관측 과정에서 오류가 없지 않는 한 각 사람의 존재성 판단은 모두 옳다고 본다. 어찌보면 상대성이론과도 비슷한듯.

4 comments

  1. 존재에 대한 경험적 + 주관적 정의를 채택하고 계시는군요.
    인간이 외부세계에 대해 알 방법은 오감 뿐인데다가
    확실한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 뿐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정의도 나름 의미는 있습니다.
    문제는 존재를 저렇게 정의해버리면
    자신이 태어나기 전 혹은 죽은 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맙니다.
    이런 점에서 귀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유아론에 머물러있기도 한데,
    세상을 보면 누가 죽는다고 갑자기 멸망하거나 이러지는 않으니까
    이 부분은 좀 더 고찰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컴의 면도날은 저희 논리학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정확히 설명력이 동일한 이론이 있을 때에는, 존재자가 최소인 이론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명제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오컴의 면도날은 잘못 쓰인 면이 있네요.

    1. 그리고 관찰이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면,
      관찰에 대한 정의도 해 주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2.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그 부분 때문에 막혔었어요. 존재를 이렇게 정의하면 태어나기 전의 세상은 어떻게 되는지.. ‘문헌’에 의존해서 설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뭔가 찝찝하더군요.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2. 데카르트의 결론대로, 내가 존재해야만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이네요.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우주는 존재했고 내가 죽은 후에도 우주는 존재할텐데,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일까요? 가령 퀘이사의 존재는 최근에 관측기술이 발전된 후에 알려졌는데, 그 이전에는 “존재” 그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쿼크나 전자와 같은 기본입자들도 마찬가지죠.
    만약 관측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은 것들의 결과물로 나타난 존재자들이기 때문에 인과율에 문제가 생깁니다. 관측된 순간 인과관계 전체를 우주의 시작점까지 소급해서 바꿔야 한다면 그것도 이상하죠.
    또, 나의 존재는 타인이 증명해줘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우주에 나밖에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일까요?
    서로 다른 관측 결과가 모두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진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지구 궤도 반대편에서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돌고 있는 주전자 같은 거죠.
    CERN에서 미니 블랙홀 실험을 수행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예측했고 그 특성과 행동양상을 예측해서 논문으로 냈어요. 하지만 실험 결과 미니 블랙홀을 발견하지 못했죠. 그럼, 그 실험을 수행하기 전에는 존재하던 미니 블랙홀이 실험 수행 후에 사라진 것일까요? 또, 반대로 아직 문헌이 남아 있으니 LHC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 우주 어딘가에는 존재할 수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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