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이청준) 비평문

당신들의 천국10점
이청준 지음/문학과지성사

한참 전에 과제로 썼던 비평문.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나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있는 섬인 소록도의 병원에 조백헌 대령이 새로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된다. 조백헌 대령은 환자들을 위한 낙원을 설립하기로 다짐하고 간척 사업을 진행하지만, 그곳 사람들과 여러 번 충돌하게 되고, 결국 낙원 설립에 대한 꿈은 실패하고 만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백헌 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위에는 원장을 비판 및 감시하는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상욱 과장이나 황 노인, 그리고 이정태 기자가 있다. 이상욱 과장은 1, 2부를 걸쳐 원장의 계획에 시종일관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그 이유는 나중에 황 노인과 원장의 대화와 그의 편지에서 밝혀진다.) 황 노인은 때로는 가차 없는 비판을 하다가도 때로는 열렬한 지지를 해주었으며, 이정태 기자는 1, 2부에는 별 역할이 없다가 3부에서 원장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생각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지 않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이상욱 과장의 경우 초반에는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였는지 잘 나타나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표면적인 행동에 대해서만 드러나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하는지 무척 궁금한 것이다. 황 노인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초반에는 원장이 무슨 말을 하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중후반이 되면서 원장에게 자신의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주인공 외의 인물들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유지시키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야기 진행을 흥미롭게 하는 효과가 있다.

조백헌 원장을 항상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던 이상욱은 원장의 실패가 그가 지향하고 있는 ‘천국’의 모습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먼저 원장님의 천국에는 아직도 높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우리는 누구나 오늘의 자기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 내일의 선택이 열려 있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중략…) 원장님께서는 이 섬 원생들이 목숨을 다할 때까지 편안히 지내다 갈 수 있는 그런 천국을 꾸미고 싶어하십니다. 원생들 역시 즐거이 그 천국을 받아들여야 하리라고 굳게 믿고 계십니다. (…중략…) 하지만 진정한 천국이라면 전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선택이 행해져야 할 것이고, 적어도 어느 땐가는 보다 더 나은 자기 생의 실현을 위해 그 천국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상욱이 생각하기에, 천국이란 항상 선택적으로 개선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거주자들이 자유롭게 천국을 선택하고 때론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천국이라면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라는 말은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천국은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행복의 기본 조건에는 개개인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자유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천국이라면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그 천국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 원장의 낙원은 입주자들의 선택권이 없었다. 물론, 원장과 환자 전체 집단 사이의 동의와 서약 과정은 있었지만, 환자 개개인과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입주자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낙원을 건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깊게 들어가보면 원장의 낙원을 선택하기 싫은 사람들도 ‘배반’이라는 이름하에 처단되는 것이 두려워 쉽게 선택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상욱은 또한 원장의 천국 주위에 높은 철조망이 있다고 한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원장님께서 이 섬을 그냥 누구나 살기 좋은 사람의 천국이 아니라, 쫓기고 학대받아온 문둥이들을 위한, 그 문둥이들만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하신 바로 그 점이 또한 그 천국의 철조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비록 불행한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저들에게도 온갖 인간적인 소망과 자기 생의 실현욕은 근본적으로 여느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중략..) 섬 안에 낙토를 꾸미시겠다는 원장님의 계획은 섬을 나가기만 하면 육지 사람들의 무서운 복수를 면할 수 없으리라는 협박으로 원생들의 발목을 섬 안에 붙들어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망과 방법이 다를 뿐 효과에 있어서는 목적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상욱은 조 원장이 지향한 천국이 보편적인 인간의 천국이 아닌, 특수한 나병 환자의 천국이라고 비판했다. 환자들도 결국 인간이고, 일반적인 인간들과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을텐데, 원장은 나병 환자만의 낙원을 건설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넓혔다는 것이다. 평생을 핍박받으며 살아온 환자들에게는 두 가지 욕망이 있다. 하나는 환자로서의 특수한 것으로, 외부인들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망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일반적인 것으로, 자유, 사랑, 소유, 자아실현 등에 대한 욕구이다. 이 두 모순적인 감정 사이의 갈등이 환자들의 섬 탈출 이야기에서 드러나 있다. 환자들에게 섬에서 나가라고 할 때에는 나가는 것을 꺼려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해협을 건너 탈출하려고 한다. 조 원장의 낙원은 환자로서의 욕망에만 집중했지, 인간으로서의 욕망에는 소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환자들에게 외부인들의 그들에 대한 적대성을 무척 강조했지만, 새로운 낙원에서의 자유로운 삶이나 자아실현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다. 물론, 조 원장은 환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려고 시도하기는 했지만, 황 노인의 말처럼 믿음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오마고지 둔덕에서 황 노인은 원장에게 그가 용서받지 못한 몸으로 섬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배인과 피지배인 간에 사랑과 자유가 보장될 때만 진정한 상호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배인의 사랑이 피지배인의 자유로 행해지고, 피지배인의 자유가 지배인의 사랑으로 행해져야 서로 의지할 수 있다. 이 때, 상호간의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 믿음이 없는 이유를 원장은 상욱의 편지로 깨닫는다.

“다름 아니라 그건 바로 그 편지 속에 말한 공동 운명이라는 것이었어요. (..중략..) 바로 그 사람 물음 속에 이미 해답이 마련되고 있었지요. 아까 그 믿음이 생길 수 없었던 이유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절대의 믿음이란 궁극적으로 작자가 말한 그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데서만 생길 수 있는 것이었단 말입니다.”

원장은 환자들을 위해 몸을 바쳐가며 헌신하였지만 결국 그는 그 사람들과는 다른 운명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환자들은 그를 믿지 못했고, 원장의 사랑이 그들에게 진실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것을 통해 비로소 왜 환자들이 원장을 의심하고 원망했는지 알 수 있다.

원장의 낙원이 왜 진정한 낙원이 될 수 없었는지 정리하자면, 먼저 원장은 나병 환자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지 못했고, 인간으로서가 아닌 환자로서의 천국을 지향하였으며, 그들과의 믿음과 사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것이 조 원장만이 가지는 특수한 성격의 것이 아닌, 섬을 거쳐간 수많은 원장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한계라는 것이다. 특히, 환자들과의 믿음을 얻어내려면 그들과 같은 운명을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원장들에게 불가능한 요소였다. 따라서 원장들의 계획은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일반적인 경우로 확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민들을 위한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인을 일반 서민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들이 서민들과 같은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전혀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낙원’ 또는 ‘천국’의 근본적인 한계일 수도 있겠다. 낙원에는 서로간의 사랑과 자유에 대한 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러려면 낙원을 계획한 사람과 거주자들 간에 깊은 신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종종 쉽게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낙원은 가능하다. 바로 낙원을 계획한 사람과 거주자들이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경우이다. 그들이 같은 인물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즉, 우리들의 낙원은 우리들 모두가 직접 계획하고 참여할 때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들 스스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뛰어들 때 낙원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조 원장이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혼식에서 할 주례사를 연습하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그의 주례사는 결국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분은 기왕에 남다른 사랑과 용기로 이 일을 이룩하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의 방둑을 허물어뜨리지 말고 누구보다 굳세게 그를 지키고 살찌워 나가 주시라는 것입니다. 벽을 허물어뜨리고 그 벽 대신 따뜻한 인정이 넘나들 믿음과 사랑의 다리가 놓여야 할 곳은 많습니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 동네 한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일 뿐이지만, 이는 건강인과 환자 사이의 화합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조 원장은 섬사람들에게 이렇게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화합을 이루어나가기를 주문한다. 그들은 모두 같은 운명을 살고 있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 믿음과 사랑이 존재하면 충분히 그들의 낙원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청준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낙원은 같은 운명을 살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의 이러한 주제 의식은 《당신들의 천국》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통해 훌륭하게 나타나 있다. 그렇게 화합이 이루어졌을 때, 책 제목처럼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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